미래소년코난 등장인물
미래소년코난 등장인물
코난의 주인공은 코난이 아니다?"
앞에 올린 프레데릭 백의 에피소드에서 잠시 옆길로 벗어나 이번에는 <미래소년 코난>(이하 <코난>)의 성우와 관련된 기묘한 사연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여러분들은 <코난>의 최대 주인공이 코난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마도 한국판의 경우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제가 본 한국판 <코난>은 1980년대 중반 KBS첫방영판임을 밝혀 둡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코난>을 혹시라도 원판 비디오로든가 아니면 현재 NHK 위성방송 BS-2에서 방영중인 것을 보신다면 그 작품세계가 한국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결정적인 요인으로 <코난>의 여주인공 라나의 목소리가 일본판과 한국판에서 완전히 다른 성격이라는 점을 들고 싶습니다.
우선 위의 KBS판에서 라나의 목소리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청순가련 공주형'이었는데, 그 가늘고 톤이 높은 한국 성우의 목소리는, 늘 천방지축 수퍼소년 코난에게 "제발~ 날 지켜줘~~ "라고 언제든지 외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목소리였죠.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마도 자기 스스로를 코난과 동일시하면서 TV화면속에 빠져 들어가 있는 많이 남자아이들의 마음까지 엄청 흔들어놓았겠죠?
그렇지만 놀랍게도 일본판 <코난>을 보면 라나의 목소리는 위의 목소리처럼 가늘지도 않고 톤이 높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저음에 가까운 '여장부형' 이라고 할 만하죠.
그래서 그런 성숙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 라나에 비하면 코난은 한참 미성숙한 꼬마 보디가드정도로 비춰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코난>에서 "제발~ 날 지켜줘~~"라는 식의 대사라든가 상황이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청순가련 공주형'의 목소리가 주로 그런 대사와 상황에 우리의 눈과 귀를집중시켰던 데 비해, '여장부형'의 목소리는 코난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라나의 당당하고 초연한 모습으로 우리의 초점을 옮겨가게 합니다.
제 생각에 미래소년코난 등장인물 최대 주인공은 코난이 아니라 라나입니다.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실상 <코난>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라나에게 집중됩니다.
스토리의 주된 전개에 있어서도 항상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라나이며, 어떤 상황을 최종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도 라나죠.
외톨이 섬에 쳐박혀 살던 코난이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찾게 되는 것도 오로지 라나를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코난>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차기작들도 한번 떠올려 볼까요?
특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든가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코난>과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들의 주인공은 모두 여성인 나우시카와 시타입니다.
제가 <코난>의 일본판을 보기 전에 이 두 작품들을 봤을 때 크게 놀랐던 것도, 남자주인공은 아스벨과 파즈의 역할이 코난에 비해 너무나 미미하고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왜 <코난>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라나는 성우의 캐스팅을 통해 자신의 원래의 성격을 빼앗기고 말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한국사회의 이른바 만화영화속에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어른스럽고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 아닐까요?
적어도 방송국의 만화영화 프로그램 PD라든가 녹음담당자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왜 그렇잖아요. 늘 동화속에서 그려지는 왕자와 공주의 모습이 그랬듯이요.